• 책 읽기 좋은 계절,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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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집자가 권하는 몇 권의 책

가을… 편집자가 권하는 몇 권의 책...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울긋불긋 아름답게 물든 단풍, 황금빛 물결로 가득한 들판,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과 오곡이 익어가는 내음…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요, 수확의 계절이며, 천고마비의 계절입니다. 그리고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햇살이 따스한 공원의 벤치에서든, 잔잔한 음악과 은은한 커피향이 어우러진 커피숍에서든, 고향을 향해 달리는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든… 그 어디서든 책 한 권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날들이 왔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편집자의 서가에 그윽한 향기로 남아 있는 몇 권의 책을 권해 드릴까 합니다.

(1)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별 (류시화 著)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별 (류시화 著)시를 읽기 좋은 계절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가을에 읽는 시는 더욱 가슴에 와 닿습니다. 말없는 존재들의 아우성이 시인을 통해 발현되어, 저 밑에 숨어 있던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류시화 시인이 15년 만에 내놓은 세번째 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별』에는 총 56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삶에 대한 시인의 자세와 경험이 어우러진 이 시들은 마치 맑은 물로 가득한 호수처럼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비춰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삶에는 시로써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2) 별을 스치는 바람 (이정명 著)

별을 스치는 바람 (이정명 著)이정명 작가의 『별을 스치는 바람』은 1945년을 전후한 시점 후쿠오카 형무소를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형무소 검열관 스기야마 도잔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주인공이자 젊은 간수인 와타나베 유이치가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됩니다. 하지만 살인사건의 이면에는 악마 같았던 검열관 스기야마와 윤동주의 조우, 윤동주의 글을 통해 변해가는 검열관의 모습, 문학과 예술을 사랑했던 이들의 아름다운 연대. 그리고 위생검열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생체 실험의 실체 등이 밝혀집니다. 스기야마가 그랬던 것처럼 와타나베 역시 윤동주를 지켜내려 했으나 결국 윤동주는 해방을 불과 6개월 남겨 놓고 사망하게 됩니다. 일제 강점기 , 태평양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글을 쓴 윤동주 시인. 그의 주옥 같은 시들이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서 어떻게 태어나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병률 著)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병률 著)아직도 생생합니다. 7년 전,이병률 시인이 쓴 여행 에세이 『끌림』이 나왔을 때의 문화적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여행지에 대한 소개와 사진만 실려 있던 기존의 여행 관련 서적들과는 달리 여행지에서 느낀 것들을 감성적인 언어로 표현한 에세이는 단연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두번째 여행 에세이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흔히 시간과 돈을 들여 추억을 만드는 여행을 합니다. 유명한 장소, 아름다운 곳에서 남는 것은 사진 뿐이라며 셔터를 누르기에 바쁜 우리들의 여행. 하지만 저자는 여행을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감히 시간을 사겠다는 모험’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찾아가는 낯선 곳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낯선 이들의 삶과 만나며 살아가는 맛과 의미를 되새기는 것, 그것이 진정한 여행의 묘미일 것입니다.

(4)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 (이덕일 著)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 (이덕일 著)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인문학 고전 읽기 열풍, 그 중심에 공자의 『논어(論語)』가 있습니다. 혹자는 고전의 참뜻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원어(原語)로 읽는 것이 가장 좋고, 번역본을 읽으려면 주석이 달리지 않은 책을 봐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배경을 반드시 헤아리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후 배경을 잘 설명해 주는 책들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이덕일 선생의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는 일종의 논어 주석서입니다. 논어의 모든 구절을 풀어 쓴 책은 아니지만, 공자의 일생을 따라 저자가 추린 부분에 대한 시대적 배경을 상세히 풀어 써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책입니다. 2500여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현대인들에게도 큰 가르침이 되고 있는 『논어』를 통해, 이 시대를 헤쳐나갈 혜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5) 삶을 바꾼 만남 (정민 著)

삶을 바꾼 만남 (정민 著)마지막 책은 정민 교수의 『삶을 바꾼 만남』입니다. 이 책은 다산 정약용과 그의 제자 황상(黃裳)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1801년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를 갔을 때, 아전의 아들이었던 열다섯 살의 황상과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집니다. 황상은 다산으로부터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삼근계(三勤戒)의 가르침을 받으며, 한 마음으로 학문에 매진하게 됩니다. 때론 칭찬도 받고, 때론 호된 꾸지람을 들으며 학문에 정진하는 황상의 모습은 우직함 그 자체였습니다. 다산이 해배(解配)된 이후 많은 제자들이 등을 돌리게 됩니다. 강진에서 본 스승은 하늘만큼이나 높았지만, 한양에서 본 스승은 한낱 폐족(廢族)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출세를 위해 공부하던 시절, 황상은 다산이 누차 강조한 ‘유인(幽人)의 삶을 실천해 나가며 스승의 뜻을 이어갑니다.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만남, 그리고 동행을 통해 진정한 사제(師弟)관계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